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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숲 속의 작은 길

투자이야기

by 세익 2022. 7. 1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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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숲 속의 작은 길"

이 글귀는 내가 1980년대 학창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수필 제목이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얼마 남아있지 않은 삶의 날들을 병마와 싸우면서 병상에서 인생에 대해 묵상하고 깨달은 내용을 진솔하게 써놓은 글이었다.

세부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잔잔한 여운은 아직까지 나의 가슴에 남아 살아 숨쉬고 있다.

인생에 대한 고민과 마찬가지로, 투자에 대해서도 나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오늘도 분투 중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장기 투자자조차도..

 

거래라는 것이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을 하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서  균형가격에 체결하여 권리를 서로 주고받는 행위 쯤으로 정의될 수 있겠지만, 매순간 가격이 그리도 자주 변하는 것을 보면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의 힘의 대결 또는 힘의 싸움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투자에 관한 서적이나 인터넷 카페, 블로그, 유튜브 등을 보면 저마다 자기가 주장하는 방법이 맞다는 주장이 난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이는 자기 방법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방법이 틀렸다고 꾸짖기까지 한다.

물론 투자에 정답을 찾기 어려운 만큼, 투자의 정석이라고 주장하는 글에 흠이 없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자기의 방법은 무슨 신성불가침인 것처럼 떠받들게 하면서 상대의 생각을 함부로 예단하기보다 함께 지혜를 모아 답을 찾아가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수익을 내는 투자방법이 무수히 많고, 그 중에 각 투자자의 형편과 성향이나 추구하는 목표에 맞는 방법은 서로 다를 터인데 말이다.

 

어쩌면 주식투자는 종합격투기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불법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과 전략도 활용할 수 있고, 세계 챔피언부터 초보 아마츄어가 함께 겨루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에게나 맞는 만고진리의 방법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고, 설사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그 방법을 내가 정확히 실천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고, 그 방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모호하고 불확실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뒤돌려차기가 비법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앞차기와 스트레이트 펀치가 정통이라는 주장이 있고, 유도나 레슬링 기술이 필살기라는 주장도 있다.

KO 또는 TKO를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버티기가 유일무이한 생존비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방법을 놓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 주장하면서 싸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시장에서 싸우기도 버거운데 이런 말싸움, 글싸움까지 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내 생각을 다잡기 위해 이 글을 기록해 볼 뿐이다. 나보다 투자 경험이 적은 자에게 뭔가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행운일 게다.

나는 투자에 대한 정답을 모르며, 다만 이제까지 풀숲을 헤치고 나아 온 나의 길 앞에 서서, 잘 보이지 않는 앞 길을 가용 정보와 수단을 활용하여 한발한발 내딛을 뿐이다.

현재 이 시점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며, 설사 그 방법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정확히 실천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어떤 이는 성장주, 테마주가 투자 유망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가치주가 투자의 정도라고 말한다.

투자 기간에 대해서도 성장주, 테마주를 시장 모멘텀을 활용하여 발빠르게 치고 빠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가치주를 발굴하여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주식시장에 관한 한, 어느 한 가지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다. 투자자에 따라 단기, 중기, 장기의 개념이 다르고, 성장주, 테마주, 가치주에 대한 기준과 해당 종목이 다르며, 가치주만을 놓고 보더라도, 배당 가치주, 자산 가치주, 성장 가치주 등 그 성격이 다양하다.

시장분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자도 이미 시장의 어떤 들뜬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종목을 찾고 기업을 분석하고, 밤세워 공부하다가는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주식시장 들여다보기도 싫다고 hts를 덮어두기도 하는 나약한 인간일 따름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 확신이 드는 이유는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카페에서 평소에 발굴한 종목이 폭락을 하면 더 살 수 있는 기회이고, 배당수익률이 올라간다고 환호성을 울려야 맞을 것 같지만, 이미 실탄이 떨어진지 오래라고 울쌍을 짓고 카페 분위기가 침울해보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에 이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주식시장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나에게 맞는 투자 방법을 찾으려 할 때,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할 때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듯하다. 이렇게 열린 사고로 시장을 대하고, 방법을 찾으려 할 때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올해의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주장이 수학에서 답을 찾는 것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투자의 세계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본질적인 문제들은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라는 주장이나, “저에게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고,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이다.." 등이 그런 예이다.

특히, 필즈상 수상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는 그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오늘도 투자의 답을 찾고자 길 헤메는 나에게 희미한 등불처럼 다가온다.

 

허 교수는 조합론의 문제를 대수기하학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독창적인 방법론으로 올해 필즈상을 받았다.

그는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이라는 겉보기에 다른 수학 분야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경계 짓기가 선행했기 때문에, 그 경계를 포착하고 뛰어넘을 때 두 대상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여러 비유를 들어 가며 설명했다.

그는 수학에 있는 가장 큰 경계가 '이산 수학'과 '연속 수학'이라며, 언어에서도 이와 같은 경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중에게 일례로 '성문영어'에서 배운 '가산(셀 수 있는, countable) 명사'와 '불가산(셀 수 없는, uncountable) 명사'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는 영어에서 '오렌지'는 셀 수 있는 명사지만 쌀(rice)은 셀 수 없는 명사로 분류된다며, "물체를 나누는 기준은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도 내일 열릴 시장을 앞에 두고, 투자에 참여하는 인간 다수 또는 시장 선도 세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눈을 지긋이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1. 원웨이 상승

  2. 하락하다 조정후 상승

  3. 원웨이 하락

  4. 상승하다 반등후 하락

  5. 전일 종가 부근의 보합 마감

 

많은 이들이 말한다. 당일 시장의 방향과 같은 단기 주가 방향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경기, 금리, 환율과 같은 거시 경제 흐름은 예측할 수 없으니 괜한 헛고생하지 말고 개별 기업 분석에 집중하라고.

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개별 기업의 미래를 포함하여 "모른다"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오늘과 내일의 시장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과 발버둥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가장 큰 비판이 단기투자가 홀짝 게임과 같은 도박에 가깝다는 주장인데,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도박성이 내포된 투기적 거래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당일 예측이 결코 쉽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상승 장에서 상승을 맞추고 매수했더라도 위의 2번에서 털리고 상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물론 4번의 시장에서 짧은 수익내는 경우도 있지만) 5번은 내편이 아니므로 내가 이길 확률은 꽤 낮으며, 장기 투자로 승리하는 자가 소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단기 투자자 중에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자도 소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투기꾼과 순수한 투자자가 그렇게 쉽게 경계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어떻게 나뉘느냐는 (투자에 참여하는)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나는 투기자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몰라도 그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는 많은 주식투자자는 고수익을 노리고 시장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주식시장이라고 하는 곳이 태생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은 곳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더욱이 이는 개념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고 파는 투자 행위가 이루어져 내 계좌에 숫자로 돈이 찍히는 실천의 문제이지 않은가?

또한 장기투자가 답이라고 하는데, 과연 장기 가치투자를 주장하며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 중에 장기라는 기간에 대해 얼마나 의견이 일치하며,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그렇게도 예측할 수 없다고 도외시하는 어떤 상황에 직면하여 주식시장에서 나오는 사람들(특히 개인투자자들)이 태반일 거라는 생각이다.

도대체 얼마의 기간이 장기투자란 말인가?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같은 주식투자의 범주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르고 자기의 방법이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주장하곤 하지만, 부동산 투자자나 예금 저축자 입장에서 보면, 주식 투자자는 모두 투기꾼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도 매스컴에서는 주식투자, 부동산투기라는 외침이 귓전을 울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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